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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벌새> 김보라 최은영외 4명, 은희를 통해 본 1994년의 우리의 자화상

by byobyory 2022.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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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영화제에서 25관왕을 차지한 영화

 이 책은 영화의 오리지널 시나리오와 이 주제를 가지고 여러 사람들(작가, 평론가, 변호사, 여성학 연구자)들의 감상이 짧은 글로 엮여있습니다. 또한 책의 마지막에는 김보라 감독과 미국의 만화가 앨리슨 벡델의 대담 내용이 실려있습니다. 영화 벌새는 2019년 개봉한 뒤 2020년까지 국내외 영화제에서 50여 개 이상의 상을 받았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도 영화에 대한 호평과 긍정적인 기사를 주변에서 많이 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책을 읽으면 한 편의 영화가 머릿속에 펼쳐지는 느낌이어서, (심지어 영화에서는 삭제된 분량이 책에는 실려있습니다) 꼭 영화를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 영화를 보기 전에 이 책을 읽으면 벌새라는 작품을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감독 김보라

 이 작품을 읽고 감독의 생각을 조금 들여다보게 되면 작품 속의 은희라는 인물이 더 친숙하게 느껴집니다. 1981년생의 김보라 감독은 동국대학교와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각각 영화 영상학 학사와 영화학 석사과정을 밟았습니다. 2011년 ‘리코더 시험’이라는 단편 영화로 데뷔하여, 2012년부터 벌새의 초고를 쓰며 수정을 거듭하다 2018년에 이 영화를 연출합니다. 시나리오를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작가의 말’에 따르면 처음엔 은희의 이야기가 너무 자신의 이야기 같아서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본인이 자라오면서 겪은 상처들과 제대로 마주하면서 작품을 완성해 나갔고 비로소 그 과정에서 치유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1994년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나는 작품 속 은희의 나이보다는 어리기 때문에 1994년의 기억이 선명하지 않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지만 유독 텔레비전에 뉴스 특보 자막이 많이 나왔던 해였던 것은 기억이 납니다. 1994년에는 북한의 김일성이 사망했고,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그 이후에도 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96년 강릉 무장 공비 침투사건, 97년 대한항공 괌 추락사고 등 대형 사건 사고들을 뉴스로 접하며 사고와 죽음 등 여러 가지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작품 속 주인공 은희는 이 시기에 중학생 소녀입니다. 사춘기 소녀의 눈으로 바라본 그 시대의 모습들이 제가 알던 풍경과는 다르게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시대적 분위기를 대략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은희라는 인물의 필터를 씌운 안경으로 다시 그 시대를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은희의 시선을 통해 담담하게 그려지는 슬픔과 희망 


 은희는 떡집을 운영하는 부모님과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살고 있고 위로 오빠와 언니가 있습니다. 친구와 남자친구도 등장하고 주인공에게 큰 영향을 주는 한문 선생님도 있습니다. 이야기가 전개되어 갈수록 은희의 주변 상황을 보면 마음이 참 아픕니다. 아버지와 오빠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 집안 분위기 속에서 오빠에게 맞으며 지내고, 잘 지내던 친구나 남자 친구와 갈등도 생기고, 귀 아래에는 혹이 생기고 암울한 일들 속에서 유일하게 희망이 되어주는 인물은 한문 선생님 영지입니다. 솔직히 이 이야기 속에서 저는 은희와 영지의 관계와 관련된 장면이 가장 가슴 아팠습니다. 결은 다르지만 어렸을 때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읽고 펑펑 울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느낌과 비슷했습니다. 결국 이런 여러 가지 상처들을 겪으며 은희는 성장합니다. 또한 성수대교 붕괴 사고를 기점으로 가족들의 분위기도 긍정적으로 바뀝니다. 우리는 모두 이런 아프고 슬픈 과정을 통해 성장하지만 지금까지 저는 책이나 영화, 드라마에서 상처받는 청소년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합니다. 딱히 나 자신은 성장하면서 학창 시절에 큰 트라우마가 있을 정도로 힘든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도, 책이나 미디어를 통해 상처받는 청소년을 보는 것이 힘이 듭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볼 때도 은희의 아픔이나 상처가 언제 해소될까 하는 기대감으로 끝까지 읽었습니다. 


1994년과 지금 


 나는 다행히 형제 중에 오빠가 없어서 남녀 차별을 느끼지 못하며 자랐습니다. 하지만 명절 때 가끔 얼굴을 보던 사촌오빠가 집안의 장손이라는 이유로 집안 어른들에게 좋은 대접을 받고, 함께 놀던 사촌 언니와 나를 장난으로 때리거나 괴롭혔던 기억은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매우 싫어했지만 문제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분위기나 상황이 과거에 비해 많이 나아졌으리라 생각합니다. 감독의 성향이나 젠더 갈등을 이유로 이 작품을 깎아내리는 의견도 있지만, 그저 단순히 남녀를 떠나 은희라는 주인공의 눈으로 보고 겪은 당시의 시대상은 이랬겠다고 하는 마음으로 읽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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