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에 이은 '서른의 반격'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이 ‘아몬드’를 읽고 손원평 작가의 작품이 좋아 이 책을 읽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 또한 그런 사람 중에 한 명이지만,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한 가지 더 있었습니다. 바로 이 책을 읽을 당시에 제가 30대이기도 했고, 나아가 주인공 김지혜와 같은 해인 1988년에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88년생이 아닌데 김지혜와 주변 상황을 어떻게 묘사했을지 궁금하기도 했고, 김지혜라는 인물은 과연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어떤 반격을 보여줄지 궁금했습니다. 조금 의외였던 점은 소설의 분위기가 와는 다르게 밝은 청춘드라마처럼 흘러가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보다는 가볍고 현실적인 분위기여서 더 쉽고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주인공 1988년생 김지혜
가벼운 분위기이지만 주인공 김지혜가 안고 있는 고민과 걱정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사회의 부조리함과 개인에 대한 고민이지만, 저 또한 겪었고 현재도 겪고 있는 고민이기에 김지혜라는 인물에게 쉽게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소소하게는 국민학교로 입학해 초등학교로 졸업하게 된 점부터 시작해, 일하고 있는 회사에서 정직원이 되고 싶은 열망과 초조함도 이해가 되었고, 김지혜 주변의 여러 인물 또한 제 주변에도 있을 법한 인물들이었기에 더 몰입되었습니다. 저 역시 회사에 다닐 때 혼자만의 쉼이 필요해 혼자 점심을 먹은 적이 있었기에 ‘정진씨’가 이해가 되었고, ‘김부장’만큼 더럽고 혐오스럽지는 않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상사 때문에 하루하루 스트레스로 메말라가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학교에 다닐 때 반에 꼭 한두 명쯤은 있었던 ‘지혜’라는 다소 흔한 이름 때문인지는 몰라도, 주인공이 학창 시절 친구처럼 느껴져 더 몰입해 읽게 되었습니다.
소소한 반격은 때론 삶에 도움이 된다
주인공은 아카데미에서 인턴으로 일하던 중 또 다른 인턴으로 입사한 ‘규옥’을 만나게 되고, 무료 우쿨렐레 수업을 듣다가 ‘남은 아저씨’와 ‘무인’이라는 인물을 만나게 되면서 부조리한 세상을 향한 작은 복수를 꿈꾸게 됩니다. 이 복수라는 것이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장난스럽고 작은 것들이라는 점이 오히려 소설을 유쾌한 분위기로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쉽지는 않지만 누구나 이런 식의 소심한 복수를 꿈꾸며 살아가기에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물론 그 복수가 끝까지 계속되지도 않고, 어떤 갈등으로 인해 4명의 인물은 제각각의 자리로 돌아가지만 그들의 작은 행동들은 무의미하지 않았고, 독자로서 작게나마 통쾌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
저는 30대가 되면서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편이 많아졌습니다. 이런 소설 혹은 영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조건 부당함을 인내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20대를 겪어오면서 체득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반격을 합니다. 20대 때는 나중을 위해 다소 비상식적인 일들도 무조건 참고 인내해야 하고, 무조건 윗사람의, 조직의 눈치를 잘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서른을 기점으로 나는 조금 변했는데 어쩌면 책 속의 인물들도 서른이기에, 혹은 서른이 넘었기에 사회의 부조리를 향해 작게나마 반격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가만히 있으면 그게 당연한 줄 아는 사회, 호의를 베풀면 그것이 권리인 줄 아는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누구나 자신을 지킬만한 굳은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본 서점 대상 번역 소설 부문을 수상한 '서른의 반격'
이 책에 대해 리뷰를 적다 보니 최근 2022년 4월에 19회 일본 서점 대상 번역소설 부문을 수상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같은 부문의 상을 한 작가가 두 번 받은 적이 없는데, 손원평 작가는 '아몬드'에 이어 이 작품으로 두 번 수상한 작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일본의 청년들이나, 한국의 청년들이나 모두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작가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 소설을 집필할 당시에 절망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절망감을 몰아내는 방법 또한 ‘계속하는 것뿐’이었다며 비슷한 상황의 젊은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을 주고 싶다고 적혀있습니다. 작가의 뜻대로 이 소설을 읽으며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공감을 통해 위안을 얻기도 하고 힘을 얻기도 했습니다. 치열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서른이 아니라도 이 소설을 통해 위안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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