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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종이 동물원> 켄 리우, 마법 같은 그리고 조금은 쓸쓸한 모정

by byobyory 2022.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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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라보는 중국계 미국인의 시각

 

 가끔 여러 국가와 문화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궁금해 책을 읽을 때가 있습니다. 같은 날에 같은 장소에서 일어난 어떤 사건도 사람들은 모두 다르게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작가는 11살에 이민한 중국계 미국인이지만 그는 살아오면서 자신의 뿌리와 역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온 것 같습니다. 살아오면서 그가 중국과 역사에 대해 쌓아 온 가치관들이 그의 작품에 녹아있다고 느꼈습니다.  

 

역사와 SF적인 요소가 뒤섞인 14편의 단편

 

 소설<종이 호랑이는> 대표작 <종이호랑이>를 포함한 14개의 단편들이 엮여있는 단편집입니다. 대부분의 작품이 중국의 역사나 문화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있는 편이고, <모노노아와레> 같은모노노아와레>같은 일본과 관련된 작품도 있으며 SF적인 요소들이 가미되어있습니다. 앨리스 먼로가 2013년 단편소설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을 보고 그녀의 작품을 읽던 중 단편 소설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만약 그녀가 아니었다면 저는 이 소설을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흥미로운 주제의 단편들이 엮여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에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작가 켄 리우

 

 소설을 읽고 저자에 대해 찾아보던 중 작가의 이력이 대단하기도 하고 독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읽었을 때는 내심 저도 모르게 여성작가 일 것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는데, 켄 리우는 남성작가였고, 대만계 미국인 SF 소설가인 테드 창과 비교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1976년에 태어나 11살에 미국으로 이민한 후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했고, 이후 하버드대학 법학전문대학원을 나와 변호사로도 7년 동안 근무했다고 합니다. 소설가로서는 무려 2002년에 등단해 멈추지 않고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여, 2011년에 이 작품<종이동물원>으로 여러 상들을 수상하고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작가로서는 꽤 늦게 인정받은 셈이었습니다. 현재도 낮에는 보스턴에서 법률 컨설턴트로 일하고 저녁에는 소설을 쓰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작품과 상관없이 자신의 일을 하며 소설을 쓰는 모습이 인간적으로도 대단한 사람이라고 느꼈습니다.

 

휴고상, 네뷸러상, 세계환상문학상을 동시에 수상한 <종이 동물원>

 

 위의 세가지 상을 동시에 받은 작품은 <종이 동물원> 밖에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사실 때문에 큰 기대를 가지고 읽으면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줄거리를 요약하면 중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를 둔 주인공이 등장하고, 그의 중국인 어머니는 서툰 영어와 중국어, 직접 접어준 종이 장난감들을 통해 주인공에게 사랑을 표현합니다. 그 종이인형들은 살아 숨쉬며 주인공의 어린 시절을 함께하지만 주인공은 점점 성장하면서 중국인 어머니를 홀대하고, 귀찮아하며 전형적인 몹쓸 자식 같이 행동합니다. 하지만 성장한 후에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구석에 처박혀있던 종이 장난감들을 발견하며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는 내용입니다. 어떻게 보면 뻔한 내용이지만 소설을 읽으며 쓸쓸함을 느꼈습니다. 책을 읽으며 중국인 어머니에 대한 동정심이 들어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하찮은 종이로 만든 장난감들이라고 할지라도 그녀에겐 그게 자식에 대한 최선의 사랑이었음을 느끼며 답답할 정도로 무심하고 야속한 주인공에 대해 화가 났습니다. 뒤늦게라도 종이호랑이를 통해 어머니를 기억하고, 어머니가 남긴 편지의 사랑 애()를 써보며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지만 이미 너무 시간이 흐른 뒤 기에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살아숨쉬는 종이 장난감들이 자아내는 신비로운 분위기 속에서 자식에게 전달되지 않는 안타까운 모정. 이런 점들이 이 작품만의 여운을 남기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주목할 만한 또 하나의 단편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

 

 어렸을 적, 2차세계대전 중 일본의 만행이라고 불리는 ‘731부대’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정현웅 작가의 <마루타>라는 소설인데, 어린 나이에 읽고서 끔찍한 내용에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한 행태를 저지르고도 가해자인 등장인물은 관련 내용을 미국에 팔아 잘 먹고 잘 사는 이야기인데 이 소설은 저에게 역사의식이나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하도록 영향을 주었습니다. 작가의 단편집에 마지막 순서를 차지한 이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을 읽으며 그 때의 기억을 되짚어보았습니다. 과연 작가는 중국계 미국인으로 731부대의 만행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를 생각하며 빠르게 읽어 내려갔습니다.작가 스스로 인터뷰에서 가장 아끼고 자랑스러워하는 이야기라고 밝혔다고 하는데 일본에서는 이 작품만 빠지고 출판되었다고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 또한 중국 공산당에 대한 비판적인 부분 때문에 일정 부분이 삭제된 채 출판되었다는 점입니다.작가가 아끼고 자랑스러워하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동북아시아 국가 중 대만과 한국만 온전한 내용으로 출판된 것입니다. 이미 일어난 일을 누군가는 누군가는 대중에게 숨기고 싶어 하고 누군가는 대중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지며 알리고 싶어 합니다.켄 리우의 단편들을 읽으며 각자의 국가에서 각자의 입장의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 단편집은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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